학교의 추억을 마시는 공간, 오늘은 카페로 변신한 교실에서 교복 입고 커피 한잔을 하는 폐교 카페 체험기를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책상에 팔을 베고 졸던 오후, 칠판에 낙서를 하다 선생님께 혼나던 기억, 점심시간이면 운동장을 뛰어다니던 순간들… 그 모든 학창 시절의 풍경이 지금, 커피 향 속에서 되살아납니다. 이번에는 폐교를 개조해 만든 이색적인 교실 카페에서 그곳에서는 ‘추억’을 마시고, ‘감성’을 찍고, ‘쉼’을 누릴 수 있는 이야기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 교실이 카페가 되다, 추억으로 들어가는 입구
제가 방문한 곳은 충북 제천에 위치한 ‘학교다방’이라는 공간입니다. 이곳은 1984년에 개교해 2006년 폐교된 초등학교였는데요,
10년 가까이 방치되어 있던 공간을 한 지역 청년 팀이 직접 개조해 만든 폐교 리모델링 카페입니다. 입구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낡은 교문 위엔 ‘학교다방’이라는 간판이 달려 있고, 한쪽엔 자전거와 주번표, 체육복이 가지런히 놓여 있어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고요했던 복도에 활기가 느껴졌습니다. 예전 교실을 거의 그대로 살려 만든 카페 공간은 칠판, 나무 책상, 교실 시계, 스탠드 칠판, 분필까지 그대로였습니다. 책상 위에는 커피와 디저트가 놓여 있고, 교탁엔 메뉴판이 올라와 있는 모습이 꽤 인상 깊었어요. 심지어 ‘체육복’과 ‘교복’도 대여해 줘서, 실제 그 시절 느낌으로 촬영도 가능했습니다. 그 교복을 입고 칠판 앞에서 커피잔을 들고 찍은 사진은 정말 특별한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2. 감성을 마시다, 커피 한잔에 녹아든 기억
카페 내부는 단지 ‘학교 콘셉트’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세심하게 꾸며진 인테리어와 분위기, 그리고 그 공간에서 느껴지는 감성은 정말 독보적이었어요.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는 ‘분필라떼’와 ‘체육대회 티라미수’입니다. 분필라테는 흰 우유 거품 위에 노란 라테 베이스가 올라가 있는 메뉴인데, 꼭 노란 분필이 녹아든 듯한 비주얼이 인상적이었고, 맛은 달콤하면서도 고소해 누구나 좋아할 맛이었습니다. 체육대회 티라미수는 철제 도시락에 담겨 나오는 디저트로, 딱 봐도 소풍날 친구들과 도시락을 까먹던 그 시절이 떠오르는 비주얼이었죠. 디저트를 먹으면서 맞은편 교탁 위에 있던 ‘생활기록부’를 열어보니, 손님들이 적어놓은 추억, 편지, 낙서들이 가득했어요. 또한 각 교실 한쪽 벽면에는 ‘기억의 게시판’이라는 공간이 있어 방문자들이 어릴 적 학교에 대한 추억을 적어 붙일 수 있었습니다. “학예회 때 앞에서 떨면서 노래 불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책상 서랍 안에 몰래 간식을 숨겨놨었는데…” 그 짧은 메모들 하나하나가 진심이라서, 읽는 내내 웃음이 났고, 가끔은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습니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단순한 콘셉트 카페를 넘어 ‘감정이 머무를 수 있는 장소’라는 점이었습니다.
3. 과거를 담고 미래로, 지역의 자산이 된 폐교
‘학교다방’은 단순한 카페가 아닙니다. 이곳은 마을 사람들과 도시 여행자들을 잇는 문화 플랫폼으로도 기능하고 있었습니다.
매달 한 차례, ‘학교 토크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음악 공연, 시 낭송, 인문학 강연 등이 열리고 있고, 지금은 소규모 로컬 플리마켓도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운영자는 “처음엔 학교 느낌을 그대로 살린 카페로만 시작했지만, 지금은 이곳을 지역 사람들과 소통하는 장으로 키워가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카페 한쪽에는 마을 어르신들이 만든 수공예품, 주민 농가에서 직접 재배한 차, 잼, 꿀 등을 판매하는 코너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청년 창업자들을 위한 팝업 공간도 운영하고 있어 학교의 빈 교실을 임대해 작가, 사진가, 디자이너들의 전시와 마켓도 열리고 있었습니다. 한때 아이들의 배움터였던 공간이 이젠 다양한 세대가 함께하는 문화 공간으로 바뀐 것이죠.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이 공간을 어릴 적 다녔던 동문들이 여전히 찾아온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떤 손님은 “내가 앉았던 그 책상에서 이제는 손자와 커피를 마신다”고도했고요. 한 공간이 이렇게 사람들의 시간을 엮고, 기억을 이어주는 장소로 거듭난다는 건 단순히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